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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 2021. 12. 7. 23:52
“ 그러고 보니 케이키 님은 연애에 관심이 없나요? ” “ …… 있어 보이시나요? ” 어머, 농담도 잘하셔라. 이름 모를 영애가 꺄르르, 웃는 모습이 꼭 밀푀유 같다는 생각을 하며 케이키는 홍차를 홀짝였다. 차를 얼마나 우린 건지, 우유와 설탕을 정량의 두 배는 넣고 저어도 쉬이 쓴맛이 사라지지 않아 제 입맛엔 버거웠으나, 몇 번이고 차를 휘적거리는 것이 예의는 아니라는 사실이 그의 혀를 고통 속에 빠뜨리자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케이키는 내색하지 않았다. 입꼬리 하나 까딱이지 않는 얼굴이 무척이나 낯익다. 영애는 이 사실을 아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얼마 전에 들었다는 연애담에 대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티타임을 시작하고 지금껏 입 한 번 다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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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 2021. 12. 7. 22:58
바다엔 한 점 좋은 감정이 없다.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보이는 하얀 조각을 모으면 돈이 되겠구나, 어린 마음에 그리 꿈꾼 적도 있었지만 ─ 결국 다 기포 덩어리였지. 남는 것은 허공에 흩뿌려진 숨 한 줌뿐이었다. 아, 이마저도 기체니까 결국 없는 건가? 감상에 젖던 헨리 펜은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들어, 돌수제비라도 하듯 바다에 던져버렸다. 통, 통, 튕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돌멩이는 보기 싫게 바다로 추락했다. 아래로, 아래로. 제 재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와 다르게 품에 안긴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펜은 영영 속이 비었다는 생각을 했다. 든 것이 없어 좋을 건 없지만, 없는 게 있다고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즐겁게 지낸다고 실실 쪼개고 다니면 뭐 하나, 결국 진심으로 즐길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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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 2021. 12. 6. 01:26
칠드런이 된다니, 재밌는 제안을 하시네요. 앗, 저는 이제 생각 안 하기로 했어요 ~ ! 정말 깩, 하고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저에 대한 기억만 모두 지워진 이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제 인연은 진작 다 끊어졌는데, 뭘 더 고려해야 하나요? 물론 제 과실이에요, 알아요! 그렇게 폭주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각성 타이밍이 안 좋았다고 생각해요. 제 잘못은 아니에요. 제가 죽인 게 아니니까요. 라치 노아가 녹음기를 들었다. 언제 사용했더라. 기억이 가물해 ~. 정확히 3년하고도 3개월, 그리고 14일 전 사용한 거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도 떠올리지 않기란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법이다. 기계 덩어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제법 익숙하고, 낯설었다. 동그란 눈을 깜박이자 회색 눈동자가 바보처럼 빼꼼,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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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T 2021. 11. 9. 00:31
헌호는 사랑니의 아픔을 모른다. 사랑니가 그거라며. 혼자 하는 짝사랑은 엄청 아프다고 한쪽이 말도 안 되게 콕콕 쑤시는 거. 어릴 적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 어른들이 모여서 꺄르르, 추억팔이라도 하며 웃었던 기억도 있지. 친구들은 …… 음, 친구들이라고 하기엔 이런 이야기를 할 법한 이들은 ─ 너무 어릴 적에나 만났던 애들이라. 어쨌든, 기억을 나열해봐야 나오는 결론은 같다. 헌호는 사랑니의 아픔을 모른다. 이야기를 듣거나, 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놓인 적은 두어 번 있다지만 직접 겪어본 적은 없다. 심장이 콕콕, 아플 짝사랑의 시기는 정말 짧았으니까. 사실 아프지도 않았지. 보기만 해도 그냥 좋고 설레서, 마냥 순정만화 같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해. 순정만화에서도 사랑의 끝은 결혼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곧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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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 2021. 11. 8. 01:06
안녕하세요, 선배. 이렇게 편지를 남기면 러브레터 같나요?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나요. 사랑의 세레나데라 불리는 것들은 여럿 주워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것 같아요. 마음은 글보다 입으로 직접 전하는 게 편한데, 그렇죠? 조금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제가 멍청해서 그런 건지, 선배가 생각 이상으로 똑똑해서 그런 건지, 둘 다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말씀은 남기고 싶어요. 제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 ─ 말, 정말 바보 멍청이거든요. 그러니까 생각없이 나쁜 행동도 많이 했고, 동정 한 번 받을 짓도 못했어요. 이유는 다양하니까, 굳이 선배의 잘못으로 넘기지 마세요. 선배가 아니었어도 저는 결국 비슷한 결과를 맞이할 거예요. 이건 확..